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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뜬금

한국의 여성파워(여풍)에 대한 일본기사

최근 한국에는 여성의 활약이 눈부시다.
한국에서는 이러한 여성들의 약진상을 '여풍'이라고 부르고 있다.

남성 중심의 혈통주의 가부장제, 남존여비적 관행 등 유교의 전통이 남아있는 한국.여성의 사회 진출은 늦다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다.

도대체 왜일까. 좌파·진보 정권이었던 김대중, 노무현 정권하에서 특히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히 진행 되었지만 배경에는 한국의 활발한 여성 운동이 있는 것 같다.

한국에서 2008년 4월에 실시된 제18대 국회 의원 선거(정수 299명)에서 41명의 여성 국회 의원이 탄생해 여성 의원의 비율은 13·7%였다.
일본의 여성 의원의 비율은 12·3%로서 일본보다 한국 쪽이 높다.

 한국의 보수 정권하의 1996년에 실시된 제15대 국회 의원 선거로 당선한 여성 의원은 9명이서 그 비율은 3%였다.10년남짓 동안 여성 의원의 수를 4배 이상으로 늘어나 정계에의 대약진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한국에서는 김대중 정권의 2000년에 정당법이 개정되어 쿼터제가 도입되었다.
내용은 비례 대표제 후보자의 50%이상을 선거구의 경우는 30%이상을 각각 여성에게 할당한다 는 것이다.



이러한 제도가 여성 의원이 약진한 배경으로1980년대에 민주화 운동으로부터 발전한 여성 운동이 활발하게 진행 되었었다.
여성의 정치가의 증가로 실제 정책 변경에도 영향을 미쳤다.
98년에는 「남녀 고용 평등법」개정, 99년은 한국 여성사에 남는 획기적인 사건으로 여겨진 「남녀 차별 금지법」의 제정(후에 폐지)이나 여성이 경영하는 기업에의「여성 기업 지원법」을 제정하고 2001년에는 여성의 지위 향상이나 사회 참여등의 정책을 담당하는 「여성부」가 생겨났다.

 변호사 출신의 노무현 전대통령의 정권하에서 요직에 여성을 적극적으로 기용 2003년 사상최초의 여성 법무장관(강금실)에 등용되었다.
대법원(최고재판소에 상당)에도 여성 판사가 탄생하고 헌법재판소의 소장도 여성을 임명 2006년에는 사상최초의 여성 총리(한명숙)가 되었다.

또 사회의 이러한 여성 등용의 풍조를 반영해서 인가  정당의 톱에 오르는 케이스도 증가했다.
2004~2006년에 걸쳐 고 박정희 대통령의 장녀 박근혜씨가 한나라당 대표를 지내고 심상정씨가 진보신당 대표를 맡고 있다.

2008년 각계의 여성의 비율을 봐도 한국 쪽이 일본보다 우세하다.
여성 지방의원의 비율은 한국의 14·5%에 비해 일본은 10·4%여성 재판관의 비율은 한국이 21·5%, 일본이 15·4%여성 검찰관의 비율은 한국이 15·7%, 일본이 12·2%로 모두 한국 의 비율이 높다.

특히 법조계에의 여성의 진출이 두드러지고 있다. 금년 3월에 연수를 시작한 한국의 제40기 사법연수생 969인중 여성은 379명과 전체의 39·1%를 차지해 사상 최다가 되었다.

한국에서 작년 실시된 행정 고시(일본의 국가 공무원 채용 I종 시험에 상당)에서는 사상최초로 여성의 합격자가 반수를 넘었다.
합격자 242명 가운데, 여성은 124명이서 여성 비율은 51·2%였다.
또, 외교관 시험도 최종 합격자 31인중 여성은 21명으로 10인중 7명이 여성이라는 것이 된다.게다가 수석 합격자는 여성이었다.

원래 일본 여성보다 파워풀하게 보이는 한국 여성들 실제로 정계, 법조계, 관계라고 하는 남성의 아성에 도전해 활보 하고 있는 여성들의 비율은 일본보다 높다.

한국보다 경제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일본 쪽이 여성의 진출이 늦는 것에 대해
일본 여자대학에서 여성학도 배운 본인으로서 조금 불편한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