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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데이의 유래와 역사

조니 2009. 3. 13. 08:39

발렌타인데이에 초콜릿 선물을 받은 남성이“답례”의 뜻을 담아 3월 14일의 화이트 데이는 사탕을 주는 날로서 1978년의 나고야의 제과업계 총회에서 구상하고  2년간의 준비 기간을 거쳐 1980년 3월 14일에 제1회 화이트 데이가 탄생했다.

일본에서 발렌타인데이의 행사가 정착하면서 젊은 세대의 사이에 “답례”의 풍조가 생기고 이런 풍조에 착안해 과자 업계에서는 날을 정해 마시멜로나 쿠키, 캔디등을 “답례의 선물”로 선전 판매하는 움직임이 나오게 되었다.
이런 움직임과 함께 사탕의 판매 활성화를 위해 「화이트 데이」로 행사화한 것이다.


발렌타인데이의 답례의 날을 화이트데이로 정하기 이전에는 서구의 습관을 모방해 「플라워 데이」 「화이트 데이」 「쿠키 데이」 등 여러가지 이름이 있었다.
이것을 「화이트는 순결의 심볼.젊음의 산뜻한 사랑」이라는 의미에서 「화이트 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또 화이트 데이를 3월 14일에 정한 것은 3 세기의 로마에서  결혼의 금지령에 저촉되는 젊은 남녀의 결혼을 도왔다는 죄목으로 처형당했는데 발렌타인 신부가 순교(2월 14일) 한 1개월 후의 이 날에  남녀는 영원한 사랑을 서로 맹세했던 것에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1980 년 3월 14일의 「 제1회 화이트 데이」에 앞서 메이지 제과·후지야 시노자키 제과·미야가와 제과·사크마 제과·사쿠마 제과·마루에 제과· 등 가맹 13사는  화이트 데이 기획 위원회를 마련해 위원장에 홈런 제과(주)
타카야나기전타카시 사장, 위원은 시노자키 제과(주) 시노자키 신이치로우 사장,  나카니시 노부오 사장, 미야가와 제과(주) 미야가와 코우이치 사장을 위촉 했다.

기획 위원회는 1979 년 가을에 도쿄 제과 회관에서 2회에 걸쳐 회의를 열어 화이트 데이의 테마로 「사랑에 보답하는 화이트 데이」를 제정해 1980년 2월 14일의 발렌타인데이와 3월 7일부터 14일의 화이트 데이에 걸쳐 라디오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1989년 제10회의 화이트데이 캠페인에 심볼 마크 「Two Lips」을 채용해 오리지날 브랜드의 캔디나 포장지·봉투에 사용했다.
커플과 튤립의 오버랩된 디자인의 “투 립스”는 연인의 2개의 입술을 의미한다.


미스 DJ콘서트,포스터에 의한 홍보, 사탕 배포및 각종 이벤트 실시,유니폼 제작,방송 및 신문광고,앙케이트 조사,화이트 데이 캠페인 걸과 화이트 신데렐라 선정 등과 화이트 데이송을 발표와 연인들을 위한  연예인, 가수 중심의 이벤트에서 어른과 아이, 모든 가족이 함께 하는 이벤트를 개최해 화이트데이의 폭을 넓히는 노력을 했다.


처음에는 단지 발렌타인데이의 답례에 초콜릿을 돌려 주자고 할 정도로의 행사로 생각으로 「화이트 데이 캠페인」을 시작하게 되었지만 발렌타인데이에 초콜릿을 받고 같은 것을 돌려주는 것보다 사탕을 주는 날로 해 보면 어떨까 하는 한 의견 에서 시작되었다.
 
지금은 완전히 국민적 행사로서 정착하고 있는 화이트 데이가 이 정도까지 성장 하게 되기까지는 많은 노력의 결과다.

화이트 데이를 구상한 일본 제과업계 대표들


1980년에 탄생한 3월 14일 화이트 데이는 매년 새로운 타이틀로 캠페인을 전개해 해를 거듭할수록 발전해 왔다.

「3월 14일 화이트 데이는 사탕을 주는 날」이라는 국민적인 일대 행사로서 뿌리 내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아왔고 올해로 화이트 데이는 30살이 되었다. 

우리나라에 전파 된지는 얼마 안된것 같은데 이미 30년 전 부터 많은 제과회사들의 공조와 상업적이고 치밀한 계획아래 부단한 노력이 있었다.

비록 탄생비화가 상업적이고 계산적이어서 실망감이 들기도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작은 마음의 표현을 할 수있는 좋은 기회의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