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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발견

더위잡는 냉라면


더위를 이기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음식이다. 이열치열이라고 삼계탕 같은 뜨거운 음식으로 땀을 쏟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냉면처럼 시원한 음식으로 땀을 식히는 사람도 있다. 난 시원한 음식 쪽이다.

집이 시골인 화실 동료에게 여름에 뭘 먹었냐고 물었더니, 시골집 텃밭에서 생열무를 뽑아다가 보리밥에고추장과 된장찌개를 넣고 쓱쓱 비벼 먹었다고 한다. 정말 맛나겠다고 하니까 그게 뭐가 맛있나며 별로라는 친구도 있다.

음식도 이렇듯 지역과 연령대에 따라 기호가 다르다. 말이 나온 김에 양푼비빔밥을 만들기로 했다. 일을 오래한 친구들은 양푼에 비벼서 같이 먹어도 거리낌이 없지만, 그렇지 않은 친구들은 그렇게 먹는 걸 부담스러워 한다. 그래서 비빈 다음 각자 그릇에 덜어서 먹기로 했다.


비빔밥을 만들다 보면 개인 특성이 잘 나타난다. 맛있으면 된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나를 먹더라도 모양을 중시하는 사람이 있다. 잘 지은 밥, 양파, 상추, 오이, 당근에서는 의견이 맞춰지지만 나머지 재료에서 엇갈린다.

아무 양념도 하지 않는 생열무로 하자고 하면 풋내난다며 열무김치로 하자는 친구가 있고, 재료를 볶아야 한다는 사람과 싱싱한 맛을 위해서 그냥 넣자는 사람도 있다. 계란도 밥이 뜨거우니까 그냥 넣자, 아니다 프라이를 해서 올리자는 것까지 별것 아닌 일로 참 열심히도 충돌한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이 있다. 여기서 선장 역할이 중요하다. 양파와 당근 애호박은 기름에 살짝 볶고 생열무가 없어 열무김치로 했다. 그리고 의견이 분분했던 계란은 노른자를 익히지 않은 프라이로 했다.

양푼에 밥을 담고 국물을 꼭 짠 열무김치와 준비한 채소들을 넣는다. 그 위에 초고추장을 올리고 통깨와 참기름을 뿌렸다. 사실 비빔밥에는 들기름이 더 좋다. 어쨌든 같이 있는 사람 의견이 다 녹아든 비빔밥이었다.


하지만 비빔밥으로 끝내기엔 뭔가 서운하다.

그래서 후식으로 시원한 냉라면을 만들기로 했다. 재료는 라면 두 개, 토마토 한 개, 오이면 된다. 애호박, 당근, 상추는 비빔밥 만들 때 조금 남겨 둔 게 있고 이밖에 얼음, 간장, 식초가 들어간다.

어떤 이는 라면스프로 국물을 만드는데 조미료 맛만 나니 하지 않는 게 좋다.

식히는 시간이 있으니까 먼저 국물부터 만들어야 한다. 냄비에 라면 두 개 분량 물을 붓고 다시마와 멸치를 넣어 우려내 준다. 이 다시마 우려낸 물이 있으면 그만큼 조리시간이 많이 단축되니까 미리 만들어 두면 좋다.

끓기 시작하면 다시마를 건져내고 준비한 채소를 넣고 더 끓인다. 간은 국간장으로 하고 차게 식혀 둔다. 이제 라면을 삶은 뒤 찬물에 여러 번 헹궈준다.

그릇에 삶은 라면사리와 차갑게 식힌 국물을 넣고 새콤하라고 식초를 조금 넣는다. 그리고 고명으로 오이와 상추 토마토, 얼음을 올리면 끝이다. 비빔밥을 먹을 때 조금 남아있던 더위까지 국물에다 넣고 후루룩 마시는 거다.

냉라면을 먹고 차가운 차를 한잔 곁들였더니 더위가 저만치 달아난다.